이주요, Two, 2005, 설치 전경, 반아베미술관, 2012.

『안전지대 밖에서』(2013), pp.145–154, 이레인 베인스트라

열람 시간: 32분

‘당신이 이 헐벗고 버려진 땅을 볼 수 있다면.’ - 오비디우스, 『슬픔(Tristia)』 III, 10,
2005년 전 흑해의 토미에서.1

나는 이 글을 고대 작가의 인용으로 시작하려 한다. 이곳 에인트호번에서의 내 삶이란 더 넓은 맥락, 즉 우리가 유럽이라 부르는 광범한 문화적 풍경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나의 모국으로, 나의 말을 선택하고 존재하며 내 자유를 찾아가는 환경이다. 이곳에는 로마 문화의 발자취가 남겨져 있다. 말과 길, 국경과 법, 심지어 제스처에서조차 로마인들이 이룩한 도시 문화의 흔적이 보인다. 옳고 그름을 구분할 때 말의 자주권을 인정하는, 로마인들의 민법과 글을 기반으로 한 문화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오래전 시작된 독서의 연장이다. 그래서 오비디우스가 토미에서 쓴 편지들을 읽으면 나는 로마제국의 끝자락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그의 목소리가 내 말 속에서 울리는 것을 느낀다.

첫째 날

나는 반아베 미술관에서 열리는 이주요의 전시를 보러 갔다. 밖에는 전시를 알리는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 오래된 건물을 잘 알고 있었다. 내 손등처럼 딱딱하고 윤이 나는 타일들. 지난 25년간 이곳에서 열리는 전시에 여러 번 왔었다. 그동안 많이 변했다. 요즘은 계단 양옆으로 말 조각상이 있는 오래된 입구에 들어서면 그 뒤로 먹구름처럼 비스듬히 걸려 있는 새 건물로 연결된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 통로에 들어섰다. ‘Barbarians’2라는 단어가 색색으로 커다랗게 찍힌 포스터들을 자세히 보지 않고 지나쳤다. 나는 그 공간의 구조를 알고 있었고 공책에 그려놓았다. 나는 여기서 며칠을 보낼 생각이었다. 이주요의 작품을 언어의 간섭 없이 내 눈으로 직접 볼 생각이었다.
먼저 보고, 말은 나중에. 그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전시의 처음부터 보아야 할까, 아니면 다른 곳에서? 아니면 그저 사람들의 조용한 목소리들을 따라가볼까? 문득 왼쪽에 있는 첫 번째 전시실에 들어섰다. 벽에 드로잉들이 걸린 작은 방이었다. ‘Two’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고 연하고 흐르는 듯한, 빠른 연필 선으로 사람들을 그린 드로잉들이 있었다. 두 몸의 경계와 접점을 그린 선들이었다. 손가락과 입, 발과 등, 다리와 어깨, 이마와 배.
반복해 맞닿은 몸들에서 시간의 요소가 느껴졌고, 순간 그 몸들을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감각은 몸의 각 부위로–허리 통증, 어깨 통증, 두통–정확하게 국지화되었고, 몸을 보고 인지하기 전, 감각으로서의 몸을 되찾고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이 갖는 지대한 중요성을 알 것 같았다. 몸은 실존의 신경중추이다. 초월이나 대상화 같은 개념들은 제쳐두고, 내 생각은 이 연약한 연필 선들을 통해 내 몸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이 드로잉들에서는 몸 자체가 사고의 대상이었다.
전시의 시작부터 나는 이곳에서, 미술관 어딘가에서 내가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었다. 나는 작은 접이식 의자에 앉아 나도 모르게 웃음지었다. 미묘하고 예리한 그의 드로잉을 몸을 되찾는 말들로 벌써 바꾸어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말들을 따로 저장해 머릿속에 가지고 다녔다.
나는 두 겹의 선으로 그린 ‘Two’라는 단어를 보았다. 프랑스 쇼베에 있는, 2만 5000년 전에 그려진 구석기시대 동굴벽화가 생각났다. 그 벽화는 숨 막히게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대담하고 유연한 선으로 그려진 벽화는 마치 커다란 동물들이 평야를 가로지르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그 어두운 동굴 속에 재현한 것 같았다. 그 선들은 만지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동물의 가죽과 털 그 자체였다. 벽화 속 동물은 만질 수 있고 냄새와 온기가 있는, 그 숨 쉬던 순간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나는 그 어둡고 따뜻한 동굴에서 두 사람을 그린 드로잉 앞으로 돌아와 전시장에 울리는 관람객들의 발소리를 듣고, 벽에 드리워진 그들의 그림자를 보고, 숨소리를 들었다. 사람들은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작품을 보았고 계속해서 보았다.

나는 다른 전시실에 설치된 음향 작업에서 흘러나오는 데이비드 디그레고리오(David DiGregorio)의 맑고 희미한 목소리에 주의를 빼앗겼고 그쪽으로 탐색을 계속했다. 내 의자를 집어 들고 종이와 판지로 만든 은색 기둥이 서 있는 탁 트인 공간으로 들어갔다.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낯익은 느낌이었다. 판지 기둥 여러 개가 공간 곳곳에 서 있었고, 물결 진 벽, 운송장이 붙어 있는 비닐로 싸인 커다란 박스와 종이 몇 장이 놓인 책상이 있었다. 천장은 노출되었고 통풍관은 은색 종이로 싸여 있었다. 나는 계속 보면서 찬찬히 눈으로 방을 검색해 방향감각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는 거기서 무엇을 보고 인지해야 하는지 파악해야 했다. 나는 글씨가 쓰인 벽으로 주의를 돌려 글씨를 아래서부터 위로,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읽기 시작했다. 아까 보았던 연한 연필선으로 쓰인 글씨는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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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잡아먹는 거인 크로노스(Kronos)와 시간을 상징하기 위해 손에 칼을 쥐고 저울을 든, 깨어 있는 여자로 표현되는 카이로스(Kairos)를 떠올린 것은 그리스문자 K(X)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이렇게 두 가지의 시간 개념을 갖고 있었다. 즉 연속적인 시간(chronology/Kronos)과 결정적 순간(the right moment/Kairos)으로서의 시간이다. 그래서 그들의 비극이 그렇게 드라마틱한 것이다. 라틴어로 X는 10이라는 수를 나타내고 이 문자는 수량을 표현하기에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는 않는다. 로마인들은 달의 변화를 관찰했고, 29일이 있는 ‘빈 달(cavi menses)’과 30일이 있는 ‘찬 달(pleni menses)’을 구분했다.3 반복되는 X의 열을 따라 위로 가보니 ‘kisses’라는 단어가 있었다. 나는 눈으로 그 단어를 잠시 쓰다듬었고, 이것이 이별의 노트임을 깨달았다. 이별의 인사는 거의 끝없이 울리고 있었다. ksksksksks. 한 번 키스하고 다음 또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그리고 결정적 순간에 또 한 번. 얼마나 끝없이 아름다운가. 내 시선은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 위에 찍힌 ‘duty free[면세점]’라는 단어들로 옮겨갔다. 이것은 이상한 역설이었다.

에어포트 로망스, 2007, 설치 전경, 반아베미술관, 2012.

의무(duty)와 자유(free)라니. 이 단어들은 일종의 슬로건처럼 익명의 공간 속에 부유했다. 인지와 궁극적인 이해를 도와줄 연결점을 찾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시스템이 되더니 표준화된 익명의 텍스트로 증발되고 만 것이다.
나는 나무판자로 만든 나무 소를 보았다. 몸통에는 풍경화가 그려져 있었고 목 부분에는 빨간 띠가 둘려 있었다. 현실은 더 이상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감각을 통해 지각할 주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몸이 떨어져 있었기에 어떤 장소에 있거나, 구체적인 무엇을 생각할 가능성이 없어져버렸다. 나는 이 게임 속에서 공이었고, 이 게임의 진지하고 위협적인 매력을 따라 이 과도기적 세계 속으로 굴러 들어왔다.
나는 억지로 순응하듯, 잠시 도피가 허락된 듯 마지못해 거기서 물러섰다. 나의 지위는 환영받는 관람객에서 복종하는 행인으로 바뀌었다. 그곳에 있는 상자들과 새겨진 글, 단어와 사물들은 넓은 공간의 계속된 응시 속에서 초점이 흐려졌고 더 이상 나의 생각이나 경험에 지배받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의 역사로부터, 나 자신의 이미지로부터 멀어졌다. 나는 여기 ‘공항’에 있었고,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진 채(duty free), 나와 관련된 모든 것들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단절된 상태가 불쾌하고 참을 수 없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주의력이 흩어지는 순간 현실은 나를 놓아버렸다. 머릿속 생각들이 시끄러워지더니 하나의 반론이 되어, 지식으로 무장한 무정부주의자처럼 순식간에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마치 내 생각들이 ‘나’와 대화를 나누듯 나는 하나의 텍스트를 생성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은 ‘그것’이 목소리도 없이 텅 빈 곳에서, 하지만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고 현재형으로 얘기했다는 것이다.

무정부주의자: 철학은 이 ‘거리를 둔(detached)’, 핏기 없는 존재를 사랑한다. 철학에서 ‘거리두기(detachment)’는 말의 자유, 즉 현실을 멀리 놓고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분리시키는 것을 말한다. 문학에서는 통과의례라고 부른다. 다른 세계로 가는 이행의 상태, 즉 만질 수 있는 현실에서 말의 세계로 가는 상태이다. 이 세계에서는 정확한 문구가 주는 확실함이 주석, 인용, 견해, 정의, 교리, 진실이라는 방대한 축적의 기반을 이룬다.
서구의 관념은 주체와 대상의 분리에 기초하기에 이데올로기 친화적 환경이 조성되었다. 다르게 말하면 글로 쓰인 언어에서 이행이 시작되고, 그래서 이 구체적이고 만질 수 있는 현실은 삶을 개념화하는 데 사용되는 개념들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의식처럼 수반되는 것은 사고, 숙고, 기도, 이론화, 집중, 또는 샛길로 흐를지 모르는 개인적인 질문이나 거짓말이다. 추상적인 사고에 없어서는 안 되는 전제 조건은 감각을 끄는 것이다. 철학은 공항에서 시작된다.

글은 단지 거리를 둘 뿐 아니라, 과거를 조작하고 구성하는 역사적인 관점이라는 시발점을 제공한다. 유럽인들이 비싼 가운처럼, 자유롭고 개인적인 사고의 근원처럼 어깨에 걸치고 다니는 철학의 출발점은 그리스의 스토아이다. 그리스 문화에서는 글을 사용해 개념을 세웠고, 이를 윤리학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보다 수천 년 전 수메르인과 이집트인들은 글쓰기를 낮과 밤을 정확하게 관찰하기 위한 의식(ritual)으로 사용했다. 그들은 정확한 어떤 시각에 떠오르는 해의 따뜻한 햇살을 반겼다. 햇살은 공간 속 특정한 지점에 떨어졌고, 노래하는 새들과 윙윙거리는 곤충과 소리 지르는 원숭이와 어울리는 말들을 함께 낭송했다.
이들은 인류에게 낮, 밤, 달, 해, 세기 등 시간 개념을 알려주었다. 기독교인이 된 유럽인들은 그리스 철학자들로부터 시간에 대한 ‘개념’을 가져왔고 연속적인 시간과 목적론적인 관점에서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의 철학 문헌에는 해와 달의 움직임이나 날의 시작과 끝, 하늘의 별자리에 대한 기술이 없다. 대신 인과관계(aitios)와 목적(telos)이라는 개념이 소개되었다.

나는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추상의 목적에 대한 나의 질문들은 미루어두고, 눈으로 모든 것을 만질 수 있다는 듯 주변을 보았다. 나의 두 눈 덕분에 발밑에 단단한 땅을 딛고 서서 수많은 X들 위에, 높은 벽 위에 있는 문장을 읽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kisses waiting for their day in the sun[해를 볼 날을 기다리는 키스들].’ 이건 마치 태양의 온기와 움직임에 용기를 얻은 이집트인들이 이곳 스토아에서 그리스 철학자들을 만나 개념화에 매혹된 채 귀 기울이듯, 감각 경험의 절정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나는 태양 아래서 피부에 느꼈던 낮의 온기를 떠올리며 내 팔을 만졌다. 나는 일어나 의자를 집어 들어 접은 다음 집으로 돌아갔다.


이레인 베인스트라(Irene Veenstra)

이레인 베인스트라는 위트레흐트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후 네덜란드 크륄러 뮐러 미술관과 BRD(Städtische Gallerie Nordhorn)에서 일했다. 저서로 『마음 속의 공간과 함께(With space in mind)』(1991), 『풍경의 길 위에서(On the way in the landscape)』(1996)가 있으며 독립 연구자로서 글쓰기에 기반한 문화에 앞선 시각적 생각의 진화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1. 토미는 흑해 연안의 고대 도시로 오늘날 루마니아의 콘스탄티아이다.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명으로 토미에 유배되어 살다가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슬픔』은 그가 유배 생활 중 쓴 시집이다. 

  2. 야만인, 미개인이라는 뜻인데, 그리스인들은 이민족을, 기독교인들은 이교도를 이렇게 불렀다. 

  3. 로마의 달력은 음력이었고, 로마인들은 보름달 사이의 간격을 29.5일이라 보고 29일과 30일이 있는 달로 나눴다.
    [이 글에 실린 주석은 모두 역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