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인사, 황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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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문득 홍콩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여럿이 그곳에 가려는 이유에 대해 물었지만 나는 옹알이하는 아기처럼 두루뭉술한 대답을 했다. 아직도 좋은 대답이라고 부를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나의 렌즈에는 익숙하고 대체로 예상 가능한 것들이 걸렸다. 나의 얼굴이나 가족, 친구의 얼굴이었다. 내가 그어놓은 선 안에 있는 얼굴을 바라보고 진동을 만지작거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여겼다. 사진을 널어놓고 바라볼 때 목 언저리가 따끔한 느낌을 떼어놓을 수 없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홍콩행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양해를 구하고 잡혀있는 일정을 멀찍이, 혹은 가까이 조율하고 구매 버튼을 꾹 누르면 끝이었다. 헬멧과 방독면을 알아보고 착용해볼 때만 해도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는 감상만 남았다. 내가 쓸모없다는 생각에서 괜한 방식으로 도망가려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 몸이 방안에서 가라앉는 것보단 차라리 다치고 피가 나더라도 쓰임새를 찾았으면 했다. 비행기를 타고나서야 내가 어디로 걸음을 하는 것인지 조금 실감했다.

큰일이 들이닥치기 바로 전처럼 도시에는 미적지근한 적막이 맴돌았다. 황급하게 지워진 글씨와 고장이 난 신호등이 도시의 일과를 대략 설명하고 있었다. 내 기록이 선할 것이란 믿음이 없어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부단히 바라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뒤로 밀려나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사진을 찍었다. 버릇처럼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다. 피로에 휩싸여 증오만이 남은 경찰의 눈이기도 했고 희생을 일찍 알아버린, 앳된 시위대의 눈이기도 했다. 내가 바라본 것이 전부 인간의 눈이라는 게 때때로 서글퍼지기도 했다.

난간에 올라가려고 발을 딛고 있는데 한 할아버지가 웃으며 내 팔을 세게 잡아 주셨다. 빛을 본다는 점에서 생긴 이해가 우리를 강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하나에서 둘, 둘에서 하나. 눈이라는 단서가 숙제처럼 남았다.

나는
당신들의 시간이 무사하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그곳에 있었다.

몽콕 경찰서 인근 프린스 에드워드역에는 경찰의 강경 진압 규탄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작은 공간이 있다. 이곳은 매일 치워지고 매일 채워진다.
1989년 6월 4일에 일어난 베이징 천안문 사건을 뜻하는 낙서이다.
'Glory be to thee' 홍콩 시위대의 노래.
2019. 12. 08, 홍콩 시민 80만명이 거리로 나와 행진했다.

황예지

황예지는 199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수집과 기록에 집착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그들의 습관 덕분에 자연스럽게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다. 거창한 담론보다는 개인의 역사에 큰 울림을 느낀다. 가족사진과 초상사진을 중점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사진집 mixer bowl절기, season을 출간하고 개인전 마고, mago를 열었다. http://yezoi.com